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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을 위하여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쓰다'

"건강100세 시대 열려면 복지행정 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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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40회 작성일 19-09-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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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종합복지관협회 전용만 회장


“젊은이들은 행복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 많은 사람들이 ‘평균수명’에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건강수명’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100세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노인종합복지관협회 전용만 신임회장을 만나 건강한 백세를 위한 노후준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노년의 희망
전 회장과 대화하면서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다시 일깨워져 소개한다.
두 마리의 생쥐를 한 마리는 빛이 없는 오크통 속에, 다른 한 마리는 한 줄기 빛이 들어가도록 구멍을 뚫은 오크통에 각각 넣어두었다. 약간의 물과 음식도 함께. 30일 후에 확인해보았더니 빛이 없는 통 속의 쥐는 죽어 있었고 빛이 들어오는 통 속의 쥐는 쌩쌩하게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약간의 편차와 오류가 있을 순 있으나 우리는 빛이 들어오는 오크 통 속의 쥐가 살려는 의지와 희망을 가졌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반면, 빛이 없는 깜깜한 오크 통 속의 쥐는 두려움 속에서 자기혼란에 빠져 스스로 희망을 잃고 삶을 포기했으리란 추측도 가능해진다. 오크통 속의 한줄기 빛은 꿈과 희망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나날이지만 준비하지 않은 미래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다.


희망 없는 노후?
전 회장은 “오랫동안 복지제도의 발달 없이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추구해온 한국사회가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준비 안 된 노년을 맞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노후로 접어드는 현 베이비부머들은 가난과 근대화를 동시에 경험한 세대로서 국가의 고도성장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지만 이들의 노후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은 치열하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에는 IMF 외환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자녀의 교육과 결혼, 부모 부양의 의무를 다했지만 정작 이들은 자녀로부터 노후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사회 일반론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회장은 우리나라의 노인증가와 출산율 감소로 빨라지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심각성에 대해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각종 사회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빈곤, 질병, 소외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노후생활보장이 선진국들에 비해 잘 되어 있지 않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건강이 나빠지고 사회인으로서의 은퇴 압박을 받게 된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도 노인을 위한 노인일자리가 없다. 사회로부터 소외받기도 하지만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으로부터도 점점 소외되고 있다”며 정부의 복지예산 증가와 노인 일자리 증가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복지는 단순히 시혜 차원이어선 안 되며, 노인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강조했다.


복지로 여는 희망
연일 뉴스에서는 연금수급권조차 없는 베이비부머들은 빚을 내 '생계형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상당수는 실제 소득을 손에 쥐지 못하며, 이로 인해 퇴직한 고령자의 빈곤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만 거듭하는 상황에 대한 보도가 오르내리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738만명 중 65.8%만이 국민연금에 가입 중이며, 이 중 36.5%만이 10년 이상 국민연금을 납부해 연금수급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나머지 63.5%에 해당하는 469만명이 은퇴 후 별도로 수입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연 매출 1200만∼4600만원 미만인 자영업자 비중은 30.6%로 가장 컸다. 1200만원 미만 자영업자는 21.2%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과반의 월평균 매출이 383만원 미만이라는 의미다. 임대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거둬들이는 소득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는 퇴직한 고령자의 빈곤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만 거듭되고 있어 베이비부머들의 앞길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 회장 역시 베이비붐 세대로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공감을 표했다. 그는 임기 내 협회가 노후 생활을 위한 Pace Maker로서의 역할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낙후한 생활시설에서 시작해 초기 복지행정의 ‘날것’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경력을 쌓은 전 회장은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린 것 없이 맨발로 복지계를 누볐다.


그가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린 복지행정 실무를 통해 깨달은 건 대한민국은 복지행정의 틀을 어떻게 설계하고 재정비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지금까지의 복지행정이 체계적인 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해 온 게 사실이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에도 급급할 만큼 여건 성숙도 안 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미뤄 둘 수만은 없게 됐다.”


복지행정의 미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전 회장이 복지계로 방향을 전환한 건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면서부터이다. 그는 평생 적도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펼치다가 생을 마감한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 동경해왔고 그러한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고 고백한다.


“또래보다 조숙한 생각인지 몰라도 일찌감치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가 있었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인생은 무엇인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한 것 같다.”


전 회장은 지난 30년 세월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대학시절 고아원을 돌며 야학을 가르치고, 농촌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다. 낙후된 시설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이들과 부대끼며 지낼수록 의미 있는 삶에 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한 것 같다. 고생하면 일찍 철이 든다고 하지 않나? 사춘기 때는 치기어린 마음에 ‘폼나는 인생’을 살고자 한 것이지만, 그 마음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진지한 쪽으로 바뀌었으니까. 시작은 그렇다. 핫하하”


전 회장은 무척 유쾌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시종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기 때문에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도 금세 유쾌하게 전환되곤 했다. 낙천적인 그의 성격일 수도 있지만 사회학을 공부하고 시설에서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터득한 공감능력이 남다른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를 폭넓게 이해하고 싶어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우리나라가 격변의 근대사를 겪던 당시의 복지행정 분야를 그야말로 황무지로 기억했다.

“복지행정이 얼마나 미개했는지, 정부가 지원을 해줘도 시설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보조금이 내려와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라 돈이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처음 행정 시무를 하러 갔는데 황당했다. 마침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려고 정부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와중에도 수혜자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더라. 88서울올림픽이 끝난 후 장애인올림픽이 시작되었는데 국내외 손님을 맞이해야 해서 ‘보여주기’ 식으로 복지예산을 늘렸지만 적시적소에 사용을 못하고

헤매는 걸 보고 가장 시급한 게 뭔지 깨닫게 됐다.”


희망을 만드는 ‘노인복지’
전 회장은 이후 장애인생활시설과 부랑아시설 등을 돌며 무연고자들 또는 250여 명이 넘는 고아들과 생활했다. 그곳에서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도 절실히 깨닫고 낙후된 시설들을 개선해나가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후원을 받기도 하고,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행정력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이때 행정 업무를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다. 행정이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례도 없을 뿐더러 시스템도 갖춰 있지 못한 상황이라서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모지였던 장애인자활센터를 한 곳씩 구축해 나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강한 의지 덕분이었다. “당시 중증요양시설과 재활시설, 보호작업장 등이 건립됐다.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인 '곰두리공판장'도 이때 짓게 됐다. 당시에는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도 전무했던 시절이다. 조달물품 구매제도도 없었고. 처음 복사용지 공장을 만들어 조달청에 건의해 만들어내는 일도 했다.”


전 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사회복지관을 건립하는 등 10년 간 행정가로서 일선에서 뛰었다. 그러다가 사회복지 분야의 구조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안에서만 이럴 게 아니라 대외적으로 폭을 넓히는 데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로 인해 그는 다양한 분야의 사회복지 경험과 경영 전문성, 정치적 역량을 기반으로 공적영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전달체계 내 노인복지관의 위상과 역할을 공고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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