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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칼럼

'벚꽃 엔딩을 위하여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쓰다'

황영조 "가장 안전한 스포츠 마라톤, 속도보다 '사브작 사브작' 길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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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63회 작성일 19-09-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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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란 말보단 ‘마라톤의 계절’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법하다. 그만큼 마라톤 인구가 늘고 있기도 한데, 선선한 바람이 살짝 등이라도 떠밀어주면 달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 펼쳐졌던 ‘2019환경페스티벌&환경마라톤대회’도 올해로 9회차를 맞았다. 오는 10월 26일 경인 아라뱃길 시천나루광장에서 그 팡파르를 울린다. 특히 소아암환우돕기 기부마라톤으로 치러지는 이번 행사의 의미가 더욱 뜻깊다. 게다가 이러한 좋은 뜻에 기꺼이 함께하기로 수락한 마라톤 영웅 황영조가 함께 달린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한 국민 영웅으로서 ‘마라톤 사랑꾼’인 황 감독을 만나 ‘마라톤별곡’을 들어봤다. 그는 2000년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을 맡고 있다.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
뼈그맨은 뼛속까지 개그맨이란 뜻으로 부르는 신조어다. 황영조도 생물학적 DNA를 타고난 천부적인 마라토너다. 어린 시절 수영, 사이클 등 다방면에서 촉망받았던 그는 파릇한 싹수로 일찌감치 세계를 놀래켰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몬주익의 영웅’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또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원폭 희생자들에게 바쳐진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아픔마저 환희로 바꾸었기에 그는 일찍이 ‘국민 영웅’이 됐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체력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 없이는 할 수 없는 운동이 마라톤이라고 못 박는다. 절대 재미있는 운동이 아니라고. “그 긴 거리를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쥐고 가야 하는 경기다. 35km 정도 달렸을 때가 가장 힘들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정신력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그래서 체력보다 정신력이다.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어도 현장에서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상대 선수에 따라 다르기도 해서

몸을 차고 나가는 인내력과 지구력이 가장 요구되는 스포츠다.”

그의 말처럼 그는 강인한 멘탈(mental) 소유자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 당시 고질병인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던 그는 발바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심장이 쫄깃하다는 그는 “땀 흘리며 노력한 게 억울해서 포기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72개국 112명의 선수가 뛰었으나 출발부터 치고 나갔는데 5km 정도 달리다 보니 발바닥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결승선을 30km 지점을 통과한 후부터는 스퍼트를 냈고 선수들을 제칠 수 있었는데, 마지막 결승점을 남겼을 때는 사력을 다했다”고.

일본 모리시타 고이치 선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전이 벌어지면서 한일 간 대결 구도는 국가의 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그가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는 온 국민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난 노력형 선수였다
육상 관계자들 역시 선수 시절 황영조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마라토너’라고 평가한다. 폐활량 등 마라톤 선수에 알맞은 신체조건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감독은 지금도 자신은 99%의 노력으로 훈련된 선수였음을 강조한다. “난 노력형 선수였다. 정상에 서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끊임없이 달렸다. 마라톤은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스포츠다. 내가 잘 뛸 수 있었던 건 폐활량이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이었다”고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안타까웠던 건 이른 나이에 두각을 보였으나 너무 빨리 면류관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조기 은퇴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안겼다. 은퇴하며 남긴 그의 말은 지금도 체육계에서 종종 회자 될 만큼 유명하다. “올림픽 2연패도 중요하나 원칙을 지키는 스포츠 정신은 더 중요하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국 마라톤이 발전할 수 있다.”

깜짝쇼처럼 화려한 선수 생활을 접은 지 30년을 뒤로, 이제 그는 나이 50의 중년이 됐다. 하지만 다부진 체격은 예전 그대로다. “솔직히 더 뛸 수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한국 최고기록 등 모든 걸 이룬 상태에서 더 이상 뛸 의미가 없었다. 운동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 욕심도 컸다. 힘든 선택이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고 말했다.

은퇴 후 그는 고려대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코오롱 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마라톤 감독으로서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헝그리 정신이 필요
“마라톤은 내 인생의 뿌리다. 몬주익 언덕을 넘을 때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죽는 날까지 마라톤과 함께할 것이다.” 10년 전 그는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라톤만큼 인간적인 스포츠도 없다는 그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스포츠 위상을 올릴 제자가 나오기를 고대한다면서도 낙관적이지 못한 현실에 쓴소리를 했다. “골프나 피겨처럼 전폭적인 부모의 지원과 경제력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열정만 있다면 노력으로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정직한 스포츠가 마라톤이다. 그런데,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환경이 좋아졌으나 헝그리 정신은 어림도 없다.”

그랬다. 그도 가난해서 마라톤을 택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희망은 더 간절해지는 것일까.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황 감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지게를 지고 밭에 나가거나 나무를 해오는 일이 더 익숙할 정도로 집안일을 도우며 학업을 병행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유도부, 육상부, 수영부 등 여러 운동부에서 선수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도로 사이클 선수로도 실제 활약을 했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종목을 육상으로 바꿨다.

본격적인 중장거리 선수로 뛰면서 두각을 보인 게 이때부터였다. 각종 육상대회에 출전해서 신기록을 수립했고, 고교 졸업 후 코오롱에 입단했다. 이듬해인 1991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 우연히 참가한 것이 기록을 세우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량은 단박에 세계 무대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인정을 받았다.

마라톤은 폐막 직전에 치러지기 때문에 올림픽의 꽃이다. 마지막 휘날레를 누가 장식하게 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만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그가 목에 건 금메달은 메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날은 40년 만에 아시아 마라톤의 기량을 끌어올린 기록적인 날로 기록되어 있다.

사브작사브작 걸으면서 뛰어라
소탈한 성격의 그는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키워야 하는 중책을 맡은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은 선수를 반드시 키우겠다. 혼자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다.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다시 한번 감격적인 올림픽 메달 신화를 만들고 싶다. 국민적인 마라톤 붐이 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는 마라톤 예찬론자다. 못 하는 운동이 없지만 마라톤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귀띔한다. “젊은 사람들만 달린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나이 들수록 마라톤을 즐겨야 한다. 기본 규칙만 지키면 가장 안전한 스포츠가 마라톤이다. 다만, 기억할 것은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80세 노인이라도 페이스만 지켜서 뛴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버하는 순간 망가진다. 걸어서 골인해라. 평소에 본인의 빠른 걸음으로 걷되 체중을 줄여라. 그래야 멀리 간다. 어느 순간 자신감만으로 속도를 낼 때 망가진다는 것을 잊지 말라. 사브작사브작 걸으면서 뛰어라.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리를 늘려라. 시간을 확보하고 여유 있게 가라. 자신의 체력을 감지하면서 속도 조절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일찍 스타덤에 오른 만큼 회한은 없는지 물었다. “인생은 스텝 바이 스텝인데, 금메달리스트로서의 황영조와 인간적인 황영조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인기스타보다는 오로지 올림픽스타로 남길 바랄 뿐이다.”

마라톤은 이제 일상 속의 생활체육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매개로 삶의 원동력이 되는 마라톤을 전 국민이 즐기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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