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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을 위하여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쓰다'

“사랑의 홀씨 마음밭에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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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19-09-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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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경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바버러 쿠니가 쓴 그림동화 속의 ‘미스 럼피우스’는 어린시절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어른이 되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와 정원에 꽃씨를 심었는데,

꽃씨는 우연찮게도 바람에 날려 혹은 곤충이나 새들의 도움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직감한다.

그 때부터 그녀가 심은 루핀 꽃씨는 온 마을을 뒤덮었고 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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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홀씨 사랑으로 ‘날다’

동화 속 럼피우스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준다.

오늘 만난 한국문화복지협의회(이하 문복협) 이계경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동화 속 럼피우스가

오버랩 되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사랑의 홀씨를 마음밭에 뿌려온 그녀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 회장은 아름다운 그림을 장애인 시설, 양로원, 보육원, 교도소, 부랑인 시설 등에 걸어주러 다니느라 바쁘다.

거칠고 황망한 벽면을 따뜻한 그림으로 채워주는 작업이다. 외롭고 쓸쓸한 곳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그를 기쁘게 한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우리가 그림을 골라서 걸어줬는데 지금은 수혜자들이 직접 고른 그림을 걸어주니 더 좋아하고,

애착도 갖는 것 같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문화봉사를 1450회가 넘게 펼쳤다.

수준 높은 공연단 사랑의문화봉사단을 비롯해서 공연장·전시관·영화관으로 직접 찾아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문화바우처와 생활 속에서 건강한 문화를 꽃피우는 좋은문화가꾸기모임, 문화예술의 다양한 창작과 매개의 폭넓은 활동을 위한

문화교육네트워크·문화자원봉사자회, 문화복지의 향상을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내는 문화복지포럼 등을 통해 봉사했다.

그녀가 뿌린 문화 홀씨도 널리 퍼져 꽃을 피우고 싹을 틔웠다. 2015년부터 시작한 전시봉사도 새로 돋아난 문화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이 회장은 “의식주를 보장해주는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은 흔히 알지만 문화복지는 생소하게 느낀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켜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감성적인 부분이 문화복지 운동이다. 멜로디 한 곡, 그림 한 점을 통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에 접근하고 참여하는 기회를 확대해 각 개인의 창의력이 발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

문복협의 출발은 여성신문으로 태동하여 1996년 사단법인체로 독립했다. 우리 문화 전반에 배어있는 퇴폐적이고 저속한 흐름을

쇄신하고 이를 거슬러 문화순화 차원에서 결성한 ‘좋은문화가꾸기모임’이 모태가 됐다. 이들이 열어가는 문화지원 사업은

‘열린 음악회’, ‘사랑의 음악회’, ‘열린 문화제’ 등으로 확대되었고, 이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사단법인으로 창단됐던 것.

이후 이들이 뿌린 사랑의 문화 홀씨는 스무 한 해 동안 퍼져나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시간이다. 그동안 배출된 봉사자만도

2000명이나 됐고, 수혜 대상자도 1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펼친 문화봉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까지 이어졌고, 단 몇 명만 있어도 공연은 계속됐다. 그리고 2005년부터 진행된 문화바우처 활동을 비롯한

‘찾아가는 문화활동’도 문화관광부의 복지정책으로 10년간이나 지속됐다. 현재는 2000회가 넘을 정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또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실버봉사단’도 문복협을 통해 처음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복지

아이템들을 정부에서 문화정책의 틀로 삼을 정도로 정책 반영에 일조한 예는 허다하다.


이계경 회장은 “서울 지역은 교육생들이 문화자원봉사자회를 만들어 매주 한 차례씩 문화기관에서 봉사하고 있다”며 “국민의

문화감수성이 높아질 때 창조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문화복지를 통한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조성이야말로 문화산업 시대인 21세기를 이끌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사랑의문화봉사단 멤버 중에는 가수 김도향을 비롯해서 장사익·이동원·이미배,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국악인 김성녀,

시인 정호승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대거 속해 있다. 이들이 문화봉사를 다니며 마음밭에 뿌린 사랑의 씨앗들은 감동적인

일화들을 낳았다. 가수 김도향이 제주에 있는 노인 요양원에 가서 공연을 하던 도중, 6개월 동안 말을 못하던 치매노인의

말문이 트이는 상황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공연을 다니면서 경험한 일화들을 들려주며 잠깐씩 감회에 젖는 듯 했다. 특히 공연이나 공연을 보면서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의식이 깨인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 힘들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고. 또 가수 김도향은 봉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위안과

감화를 받아 은퇴생활을 접고 다시 가수로 복귀하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전했다.

기쁨의 열매를 ‘맺어’

문화 전도사로서 문복협의 문화봉사자들은 전반적인 문화 행위에 대한 교육을 이수한다. 각종 문화시설의 운영과 역할에 대해

실습과 더불어 현장 방문 등의 교육을 통해 배출된다. 이들이 문화 프로그램이나 공연, 전시 등을 기획하고 현장에 나가 진행한다.


사랑의문화봉사단은 문복협의 중점 활동 사업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또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문화복지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쳤다. 공연봉사, 운영봉사, 후원봉사의 세 영역으로

나뉘어 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산간벽지 등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

봉사를 떠날 때마다 그들 역시 많은 감흥을 받고 돌아온다.

이 회장은 “매번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수혜자들이나 봉사자들이나 직접 보고 느끼는 감흥은 훨씬 크다는 걸 잘 알기에 기꺼이 나선다.

한 번은 공연 도중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가까스로 트럭의 헤트라이트를 켜고 공연하게 됐다. 근데 오히려 지역 주민들과 혼연일체가 된

뜨거운 공연을 했던 경험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봉사는 없다. 봉사자와 수혜자 상호간에 행복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고 문화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자존감과 국민의식 고양을 키우는 것이 문복협의 궁극의 목표임을 강조하면서

이 회장은 감동적인 기억 하나를 더 보탰다. “서울의 한 여성노숙인 단체를 찾아갔을 때로 기억한다. 처음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가져간 악기를 나누고, 악기 이야기를 하면서 한 음씩

소리 내는 연습을 해나가자 마음의 문이 열렸다. 마침내 감동적인 공연까지 펼쳤는데 합주를 하면서 ‘음악을 통한 마음의 교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울창한 숲이 되길

이 회장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여성운동에 처음 눈을 떴다. 1976년 청년여성연합회를 결성해 회장으로 활약했고,

여성의 전화(1983)를 만들어 가정폭력에 고통 받는 주부들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신문을 창간(1988년)하는 등 양성평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 2002년에는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2004년 국회에 입성하여 활발한 정치활동도 펼쳤다. KBS 열린 음악회를 처음 만들었고, 음악회를 열면서 손님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악회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오늘날 양성평등이 사회 보편가치와 문화로 정착하는 데는 못 미쳤으나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은 맞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여성들이 요직을 두루 확보하지 못한 부분은 많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이 회장은 앞으로 전시봉사를 더 활발하게 펼쳐 사랑이 부족한 곳에 사랑의 홀씨를 뿌리고 그 홀씨가 사회 곳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울창한 숲이 되길 꿈꾼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화가들이 전시봉사에 동참해 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내비쳤다.


"하루아침에 감성이 살아나는 게 아니지 않나. 보육원 아이들 중에는 베이비박스에서 온 아이도 있을 것이고, 부모나 타인으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림을 통해 치유 받아 감성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 많은 곳에 전시봉사가 가능하도록

제반여건이 조성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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